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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다짐

동의보감 속 약초의 땅, 지리산생명을 품은 어머니의 산을 만나다

경상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를 아우르는 해발 1,915m의 지리산은 우리나라에서 한라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웅장하고 우아한 품새, 사시사철 다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지리산에는 수천 여종의 동식물이 깃들어 산다.
허준의 <동의보감> 속 치료제가 되는 다양한 약초가 자생하는 생명의 보고로 떠나는 여행, 지금부터 시작한다.

글. 성소영 / 참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문화재청, 구례군청, 산청군청

생명을 살리는 어머니의 산, 지리산

지리산에는 별명이 많다. 백두산의 기상을 이어받았 다는 의미로 과거에는 ‘두류산(頭流山)’이라고 불렸고, 지혜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성지라 하여 ‘방장산 (方丈山)’이라 불리기도 했다. ‘방장’은 깨달음을 얻은 스님의 처소를 일컫는 말이다. 그 중에서도 지리산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수식어는 ‘어머니의 산’ 이다. 경상남도와 전라북도, 전라남도 3개의 도를 감싸 안은 푸근하고 넉넉한 품새와 셀 수 없이 많은 봉우리가 만드는 수려한 아름다움에서 온 비유이기도 하지만, 특히 지리산에 모성이 강조되는 이유는 생명의 산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립공원 제1호 이자, 우리나라 육지에서 가장 높은 산인 지리산의 품 안에는 7,000여 종이 넘는 동식물과 사람이 깃들어 있다.

대한민국 국립공원 1호, 우리나라 육지에 있는 산 중 제일 높은 지리산에는 영험한 기운이 흐른다. 생명을 살리고, 상처를 보듬어 안는 어머니의 힘. 덕분에 지리산에는 1,000여 종의 약초가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원정대를 보냈다는 설이 전해 내려올 정도로 예부터 지리산은 약초의 보고였다. 그래서일까?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경상남도 산청에서는 특히 명의가 많이 배출되었다. 청나라 조정에 파견되어 의술을 펼친 ‘유의태’, 형제가 모두 의술을 배워 명성을 떨쳤던 허초객, 허초삼 형제 등은 산청에서 사람을 살리는 기술을 배웠다.

<동의보감>을 편찬한 허준 또한 산청에서 유의태 선생을 만나 의술을 배웠다는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허나 허준이 궁중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기록은 남아 있는 게 거의 없어 얼마나 신빙성 있는 이야기인지는 확인이 어렵다. 하나 확실한 것은 <동의보감>에 등장 하는 수많은 약초가 지리산에 자생한다는 점이다. 백성들이 구할 수 있는 우리나라 재료로 치료법을 제시한 <동의보감>에는 지리산에서 살아가는 약초의 이름이 가득하다.

동의보감, 천하의 보물이 되다

뛰어난 의술로 궁중 내의원이 되었던 허준은 신분과 재산을 따지지 않고, 누구나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묵묵히 환자들을 돌보던 의원 이었다. 1593년, 선조는 임진왜란이 끝난 후 어수선 해진 나라를 수습하고자 전쟁과 기근의 고통에서 백성을 구할 수 있도록 의서 편찬을 지시했다. 이에 허준을 비롯한 어의들은 공동으로 의서 편찬을 시작 했다. 하지만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며 <동의보감> 편찬은 안타깝게 중단되었다. 이후 1601년, 선조는 허준을 다시 불러 의서 500여 권을 내어주면서 단독으로 <동의보감> 편찬을 맡아 달라는 명을 내린다. 공무가 많아 이를 성실히 수행하지 못했던 허준이 책을 펴낼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내의원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고,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양평군’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자, 허준을 질투한 신하들은 그를 탄핵하라는 상소를 줄지어 올렸고, 이후 1608년 선조가 세상을 떠나자 왕의 건강을 담당하는 역할이었던 그가 책임지고 유배길에 오르게 된 것이다. 홀로 유배지에 머물며 책을 읽고 글을 쓴 허준은 편찬에 전념해 1610년 완성된 <동의보감>을 광해군에게 올렸다. 총 25권으로 이루어진 <동의보감>은 기존의 의학 책과는 결이 다르다. 첫 번째로 병이 났을 때 치료하는 방법보다 건강을 잘 돌봐야 한다는 정신을 훨씬 강조했다.
또 중국과 조선의학을 총망라해 각 질병에 대한 증상, 처방, 예방법 등을 보기 쉽게 정리했다. 마지막 으로 우리나라에서 구할 수 있는 약 재료 위주로 처방을 내렸고, 향약 중 640개의 이름을 한글로 표기해 사용이 편리하도록 했다. 80여 종의 의학서에서 유의미한 내용을 모으고,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목차와 내용을 체계적으로 작업한 덕분에 <동의보감>은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 중국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허준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중국에서는 의학을 공부 하려면
<동의보감>을 꼭 읽어야 한다며 ‘천하의 보물’ 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동의보감>은 의학 기술이 눈에 띄게 발전한 오늘날에도 유용한 의미를 지닌다. 한의학의 위상을 드높였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으로 선정되었다.

철마다 다른 장관, 노고단 트래킹

누구나 닿을 수 있는 지리산의 봉우리 중 가장 아름 다운 곳을 꼽는다면 노고단이 아닐까. 노고단은 천왕봉, 반야봉과 함께 지리산 3대 주봉으로 꼽힌다. 철마다 다른 꽃이 피고, 단풍이 지고, 눈이 쌓여 사계절 내내 아름다움의 절정을 자랑한다. 등산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노고단에서 시작해 천왕봉에 이르는 지리산 종주 코스를 걸을 수 있기를 꿈꾼다. 노고단은 산행길이 서툰 초보자가 지리산과 첫 만남을 갖기에도 더없이 좋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지리산 횡단도로가 개통되면서 해발 1,102m의 성삼재까지 차를 타고 오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굽이굽이 산 능선을 따라 드라이브를 즐긴 후, 성삼재휴게소 주차장에서 1시간여를 걸어 올라 가면 2.6km 떨어진 노고단 정상에 다다른다. 정상을 탐방하기 위해서는 국립공원공단 예약사이트 (http://reservation.knps.or.kr) 에서 미리 방문예약을 한 뒤, 예약증을 지참해야 한다.

노고단(老姑壇)이라는 이름은 인류 최초의 인간을 탄생시킨 ‘마고 할매’를 위한 제사터를 의미한다. 노고단 정상에는 웅장한 돌탑이 자리하고 있는데, 신라 화랑들이 수련을 하면서 천지신명과 마고 할매 에게 나라의 번영을 기원하며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전망이 뛰어나고, 사방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덕분에 신라시대에는 노고단이 화랑들의 심신수련장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돌계단과 나무 데크로 오르기 편하게 조성된 등산길 이지만, 지리산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원추리, 복주머니란, 지리터리풀 등 지리산에 자생하는 식물들이 곳곳에 싹을 틔우고, 노고단 정 상으로 오르는 길목의 완경사지는 억새와 원추리의 초원이다. 봄이면 산허리에 핀 진달래와 철쭉이 아름 답고, 여름에는 원추리꽃, 가을에는 억새가 물결 친다. 특히 노고단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노고 운해는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장관으로 손꼽힌다.

지리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 화엄사

노고단에서 하산해 성삼재를 지나 길을 따라 내려 오면 지리산 자락에 있는 사찰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 하는 화엄사가 있다. 554년 백제 성왕 시절, 인도에서 온 고승 ‘연기조사’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화엄사는 가람배치가 특히 아름답다. 보통의 절은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대웅전이 가장 웅장한데 반해, 화엄사는 일반적인 경내 건물 중 하나인 각황전이 중심을 이룬다. 계단을 올라 누각을 통과하는 형태로 절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누각 옆을 돌아 마당으로 들어가는 방식 또한 화엄사만의 특징. 얼핏 비대칭 적으로 보이지만 절 안으로 들어갈수록 건물과 지리산 자락이 어우러진 풍경에 빠져들게 된다. 절을 돌며 흐르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고즈넉한 풍경 소리를 듣는 시간은 도시의 시름을 잠시나마 잊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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